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오는 23일(화)부터 28일(일)까지 5박 6일간「유엔군 참전의 날」(7월 27일)을 맞아 미국, 호주 등 16개국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등 107명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 16개국 방한 인원 : 미국(44), 호주(8), 콜롬비아(7), 벨기에(4), 에티오피아(3), 프랑스(2), 그리스(2), 인도(2), 이탈리아(2), 룩셈부르크(1), 필리핀(8), 남아프리카공화국(4), 스웨덴(3), 스위스(9), 터키(6), 태국(2)
이번 방한에는 무공훈장(을지) 및 국민포장 수여자도 특별초청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대한민국을 알리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특히, 방한 일정 중에 27일(토)에「유엔군 참전의 날」기념식에 참석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큰 용기를 보여준 유엔군 참전의 의의를 상기하고,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방한자 중에는 6·25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무공훈장(을지)을 받는 호주 참전용사 고(故) ‘찰스 허큘리스 그린’(Charles Hercules Green, 1919生)의 손자 ‘알렉산더 찰스 노먼’(Alexander Charles Norman)씨와 ‘필립 에릭 노먼’(Philip Eric Norman)씨가 방문하며, 또한 그리스에 6·25전쟁을 기리는 한국전쟁 박물관 및 기념비를 건립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는 ‘콘스탄티노스 파로스’(Constantinos Farros)씨가 특별 초청되는데, 그는 연락장교로 참전하였다.
특히, 고(故) ‘찰스 허큘리스 그린’(Charles Hercules Green) 중령은 호주 정규군 첫 지휘관으로 제3연대 3대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연천전투와 박천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뒀고, 그의 참전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고(故) ‘찰스 허큘리스 그린’(Charles Hercules Green) 중령 참전 스토리
1950년 10월 17일, 그린 중령이 속한 호주대대는 황주 쪽으로 북진, 사리원-평양 진로를 차단하면서 다음날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진지를 점령하고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리원 북쪽에서 적의 퇴로차단 임무를 수행 중 갑자기 북상하는 적을 발견하고 단 1발의 총탄도 소모하지 않고 북한군 1,982명을 포획했다.
1950년 10월 20일 정오 무렵 영연방 27여단과 호주 3대대는 평양에 입성하여 숙천-박천-정주를 목표로 진격을 계속했다. 그린중령은 우측방의 고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남하 중인 미 공수부대와 연합하여 북한군 150명을 사살하고 239명을 포획하였다.
1950년 10월 30일, 호주군 제3대대는 정주에 도착하였으나, 그린 중령은 1950년 11월 1일 적이 발사한 포탄으로 인해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린 중령은 ‘47년 호주 무공훈장(Distinguished Service Order)을 수여받았고, 6·25전쟁에서 전사한 후 ’51년 미국으로부터 은성훈장(Silver Star Medal)을 수여 받기도 했다.
현재 고인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으며, ‘15.11월에 ‘이 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올해 5월 초에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은 그린 중령의 미망인, ‘올윈 그린’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07.9월 전적지인 931고지*에 풍장(風葬)된 프랑스 참전용사 고(故) ‘모리스 나바르’(Maurice Navarre)씨의 아들 ‘필리페 모리스 나바르’ (Philippe Maurice Navarre)씨가 방한한다.
* 931고지는 851, 894 고지와 함께 강원 양구군 사태리에 위치해 있으며 6·25전쟁 당시 국군의 진격작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고지에 대한 쟁탈전에서 유엔군 3,700여명과 북한군 2만 5,000여명이 죽거나 부상한 것으로 추산돼 ‘단장의 능선’으로 불린다.
고(故) ‘모리스 나바르씨’는 ‘51.2월 유엔군 프랑스 제1대대 및 3대대 소속 일병으로 참전했다. ’51.9~10월 894-931-851고지에서 있었던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른 ‘51년 10월 12일 22시경 야간공격 중 적의 마지막 저항선 851고지에서 가슴에 유탄 파편을 맞아 부상당했다.
‘52.2월 프랑스로 귀국해 치료를 받은 고인은 ’53.3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휴전을 앞두고 고지쟁탈전으로 치열했던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53년 10월 하사로 귀국했다.
그 후 ‘04년 79세를 일기로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내가 죽은 후 유골을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한국의 격전지 931고지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결국, 고인의 유언에 따라 ’07년 9월 22일 12시 30분 주한프랑스대사관 및 21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931고지에서 그의 유골을 풍장으로 진행하였다.
아울러, 전폭기 조종사로 혁혁한 공을 세운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용사 고(故) ‘베셀 야코버스 요하네스 바데노스’(Wessel Jacobus Johannes Badenhors) 씨의 딸 ‘블라 일레인 바버’(Beulah Elaine Barber)씨도 함께 방한한다.
고(故) 바데노스씨는 1950~1951년 동안 미 공군 제18전폭비행단 2중대 대위로 참전하여 53개의 작전을 수행했으며, 특히 ‘50.12월 신안주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당시 골짜기에 숨어있던 적의 차량을 공격하여 총 8대를 폭파시켰다.
그 후 ‘51.3월 무장정찰 도중 적군의 대공사격을 받고 고인의 비행기는 신안주 방향으로 추락하였고, 추락과 동시에 비행기가 폭발했다. 고인은 동료들에게 가장 신뢰받고 능력 있는 전폭기 조종사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 속에서도 의료지원으로 사랑을 실천한 스웨덴 참전용사들의 사연도 눈에 띄는데, 먼저 ‘킴 자널드’(Kim Kjell JARNALD, 아들)씨의 부모님은 결혼생활을 하던 중 6·25전쟁 당시 함께 한국에 왔다.
그 부부는 ‘51.2월부터 ’51.5월까지 한국에 머물렀으며 아버지 ‘잉바르 자널드’(Ingvar E G Jarnald)씨는 부산적십자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기사로, 어머니 ‘잉그리드 자널드’(Ingrid O Jarnald)는 간호사로 근무했다.
특히, 이들의 사연은 다양한 신문·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6·25전쟁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자녀인 ‘킴 자널드’씨도 “부모님을 따라 의학을 전공했으며, 부모님이 참전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국민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어서 오랫동안 한국에 오는 것을 희망해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스웨덴 방한자인 ‘잉거 구스타프슨’(Inger Gustafsson, 딸)씨의 아버지 ‘스텐 오발 닐슨’(Sten Orval Nilsson)씨는 에티오피아군 교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51.5월 부산에 도착했다. 당시 어머니 ’나나 웨스트롬‘(Nanna E W Westrom)씨는 적십자 야전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는데 둘은 병원에서 만나 서로를 알게 되었고, 스웨덴에 돌아온 이후 ’51.12월에 결혼하여 ’잉거 구스타프슨‘씨를 낳았다.
이번 유엔참전용사 및 가족의 주요 방한일정은 다음과 같다.
24일(수)에는 오전에 오리엔테이션과 한복입기 등 한국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오후에는 판문점을 방문하여 남북 분단의 현장을 직접 둘러본다.
25일(목)에는 부산을 방문하여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있는 전우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 후 유엔평화기념관을 둘러본다.
26일(금) 오전에는 서울국립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인사동을 방문하고 저녁시간에는 보훈처에서 마련한 감사만찬에 참석한다.
27일(토) 오전에는 보훈처에서 주관하는「유엔군 참전의 날」기념식에 참석하고, 오후에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전우들을 위해 헌화하고 기념관을 둘러본다.
한편,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은 1975년부터 민간단체 주관으로 시작한 이후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보훈처에서 주관하면서 보훈외교의 일환으로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공식 초청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3만 3천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유가족이 한국을 다녀가는 등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뉴스출처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