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솔루션, 브레인기자] 영석 이석영선생추모식 추진위원회와 남양주시 에서는 2월 16일 오후2시,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소재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이석영 선생 순국87주기 추모식을 거행한다.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 사정을 고려하여 유족과 남양주시 관계자를 중심으로 간소하게 진행하고 남양주시 인터넷 방송인 유튜브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을 통하여 중계하고 유튜브 “우당TV”에도 탑재한다.
이 자리에는 이종찬 추진위원장과 문희상 전 국회의장, 조광한 남양주시장, 황후연 경기북부보훈지청장, 이철영 남양주시의회 의장 등 30여명이 참석한다.
영석 이석영(潁石 李石榮 1855-1934)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백사 이항복의 11세손이며, 우당 이회영, 성재 이시영의 둘째 형이다. 이석영 가문은 6명의 영의정과 영의정 추증 3명 등 9명의 정승을 배출한 최고의 가문으로 삼한갑족이라고 불렸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대감의 양자로 입양되어 1885년 증광시(增廣試) 문과로 급제 후 1904년 종2품인 장예원(掌禮院) 소경(少卿)을 마지막으로 경술국치로 사직했다.
1910년 12월 우당 이회영, 성재 이석영 등 6형제와 같이 전 가족 40여 명이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해방될 때까지 청산리 대첩 등 독립전쟁의 주역이었으며, 광복군의 주축이었다. 광복군 지청천 사령관과 1지대장 김원봉, 2지대장 이범석, 3지대장 김학규 등 광복군 고위 지휘관들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이석영은 일제가 “불령선인”으로 지명 수배하여 피신하면서 심양, 북경, 천진, 상해 등을 유랑하면서 빈곤하게 생활하다가 1934년 2월 16일 상해에서 서거하여 홍교로(虹橋路)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이석영 선생은 당대 굴지의 재산가였던 양부인 이유원 대감의 재산을 상속받아 엄청난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이유원 재산은 “경기도 양주에서 한양까지 80리 언저리 전답이 모두 이유원의 땅” 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재산을 상속받아 모두 정리하여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바친 것이다.
이날 추모식에서 이종찬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석영 선생이 서거할 당시는 임시정부가 항주로 피신 중이라 장례를 모실 분이 없어 임시로 장례를 치렀지만 왜군의 공격으로 전란이 격화되어 묘지를 보살피지 못한 채 잊혀졌다”고 회고하고 직계 후손이 없어 “87년 만에 추모식이 아닌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다”고 추모한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경기도에는 조선시대 금수저 사대부들이 모두 살았지만 국가 기울어질 때 나서는 이는 드물었다고 지적하고, 전 재산과 목숨을 항일운동에 바친 이석영 선생 6형제는 경기도의 자랑이며, 남양주의 자랑”이라고 추모한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추모사를 통해 “어둠을 밝히신 촛불이며, 빛나는 별이 되신 이석영 선생님! 남양주시 역사의 숨결 속에 여전히 살아계시는 이름 석자를 우리 시 곳곳에 새겨놓고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하도록 온 마음과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어서 이철영 남양주시의회 의장의 추모사와 남양주시민합창단의 추모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합창하고, 유족 대표로 이종걸 전 국회의원의 감사인사를 한다.
[보도자료출처: 경기도 남양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