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품새여, 길이 뻗어 나가리라!”
대망의 염원을 담은 품새 한마당다웠다. 한국 품새 최고수를 가리는 장(場)에 걸맞게 절제미와 균형미가 어우러진 몸놀림이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첫 마당의 감흥과 열광이 빼닮듯 재현됐다. 두 번째 마당 역시 폭발적 반응을 끌어내며 긴 여운을 남겼다.
2019 KTA 품새 최강전 시즌 Ⅱ가 막을 내렸다. 지난 10월 22일 하오 4시부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아트홀에서 열린 경연은 흥분과 감동을 자아낸 멋들어진 한 편의 ‘환상극’이었다.
대한민국태권도협회(KTA·회장 최창신)가 ‘재미있는 태권도’의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은 ‘품새 농사’는 풍성한 가을걷이를 이루고 끝났다. 앞으로 태권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역사의 품에 안긴 2019 추수였다. ‘대풍가’를 소리 높여 노래한 흥취를 소중히 간직하며 2020년에 다시 만나리라 기약하는 다짐을 가슴속 깊숙이 아로새겼다. 내년에 돌아와 선보일 그 모습에선, 분명 더 힘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배어 나오리라.
외연 확장, 품새 전 분야 망라한 경연 펼쳐져
이번 무대는 2019 KTA 품새 최강전 시리즈의 마지막 막이었다. 지난 3월 열린 제1막이 끝나자, 팬은 물론 언론까지도 “KTA 58년사에 없었던, 새 지평을 연 획기적 무대였다.”라고 한결같이 호평한 바 있다. 그 갈채에 고취된 KTA가 팬들의 사랑과 성원에 부응키 위해 7개월 만에 올린, 야심에 가득 찬 기획을 바탕으로 내놓고 꾸민 무대였다.
이 맥락에서, 제1막에서 새롭게 개척했던 경지의 외연을 확장했다. 자유 품새만 경연했던 제1막과 달리 이번 무대에선, 공인 품새와 새 품새까지 문호를 넓혔다. 제1경기로 공인 품새와 새 품새(하나 선택)가, 제2경기로 자유 품새가 각각 펼쳐졌다.
발상의 전환도 신선하다. 품새는 “공격과 방어의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속 동작.”(표준국어대사전)이다. 이번 최강전에선, 그 근본 개념에 초점을 맞춰 자유 품새 연기 때 이를 응용한 몸놀림을 펼치도록 했다. 그에 따라 각 팀이 고심 끝에 창안한 응용 동작이 다양하게 펼쳐져 한결 보는 재미를 배가했다.
또한 선수 구성의 폭을 넓혔다. 복식전(2명)과 단체전(3명)이 벌어졌던 첫 대회와 달리 자유롭게 3~5명의 팀(남성·여성·혼성)을 구성해 참가토록 함으로써, 박진감과 함께 관전의 묘미를 더했다. 이에 따라 이번 무대에 오른 10개 팀 가운데, 8개 팀이 5명으로, 2개 팀이 3명으로 각각 호흡을 이뤄 경연에 나섰다.
이번 대회 상금은 총 900만 원이었다. 1위가 500만 원, 2위가 300만 원, 3위가 100만 원의 상금을 각각 받았다. 전문 공연 무대인 K-아트홀에서, 경연이 펼쳐진 점도 눈길을 끌었다. 팬들은 열연을 펼치는 선수들의 땀과 호흡을 느낄 수 있어 그만큼 쉽게 일체감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팬 친화적 무대로 꾸미기 위해 도입한 관중 심사제도 역시 흥미를 자아낸 요소로 기능했다. 22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10명이 현장 관중으로 이뤄졌다. 5명의 영상·무대 전문가도 일종의 관중 심판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는 총 15명에 달했다. KTA 품새 상임 심판은 7명에 지나지 않았다. 집단 심판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판정·채점에 큰 차가 없어, 팬들의 시각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음이 엿보였다.
이번 대회는 KTA가 주최·주관하고, SPOTV가 주관 방송사로 나섰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태권도진흥재단과 아디다스가 후원했다. 네이버 TV가 생중계했고, SPOTV는 오는 28일 오후 6시부터 녹화 중계한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팬들은 품새의 멋들어짐에 듬뿍 빠졌다. 이들은 “망각했던 ‘국기(國技)’ 태권도의 우수성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밀도의 높이를 가늠하기조차 힘들 만큼 한바탕 펼쳐졌던 경연은 자연스럽게 품새 최고수를 다투는 경연장, 올림픽공원 K-아트홀을 후끈하게 달궜다. 저마다 “내가 ‘태권도 종가’의 품새 일인자다.”라고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그 기세에 걸맞은 몸놀림은 눈길을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음악과 조화를 이룬 몸놀림은 현란하고 폭발적이었다. 뛰어난 연기는 공간을 수놓으며 곧 뛰쳐나올 듯한 맹호를 담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곽여원-김지원-김태경-이옥현-한상희(K. 강화군청-수리온)였다(표 참조). 고난도 발차기-아크로바틱을 바탕으로 한 안무가 음악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5인의 환상적 열연은 관중의 넋을 빼앗았다. 시즌 Ⅰ 때 10대의 윤규성(서울 아이티고등학교 2년)과 짝꿍을 이뤄 복식전 정상을 밟았던 곽여원은 시즌 Ⅱ도 휩쓸며 당대 품새의 일인자임을 다시금 뽐냈다.
지난 7월 나폴리 유니버시아드에서 2관왕(개인전·단체전)에 오르며 품새 그랜드 슬램의 영광을 일궜던 강완진(경희대학교)의 몰락은 뜻밖이었다. 시즌 Ⅰ에서 단체전 우승을 쟁취했던 강민서-임승진을 비롯해 박지원-이소영과 호흡을 맞춘 강완진은 불안한 몸놀림 끝에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한국 품새 선수층의 두꺼움을 실감케 한 순간이기도 했다.
잔치는 끝났다. 제작물은 명품이었다. 그러나 결과물에 만족하고 기쁨에 도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 KTA가 다시 행보를 옮기려 하는 까닭이다. 더 나은, 완벽한 작품을 내놓으려는 마음에서, ‘인고의 길’에 나섰다. KTA가 칭찬과 고언을 함께 담은 비평을 가슴속에 새기며 재미있는 태권도의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다시 힘차게 내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