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구장은 축구팀에게 단순히 홈경기를 개최하는 곳 이상의 공간이다. 팀을 지지하는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는 공간이며, 상대에게는 낯설고 홈팀에게는 익숙한 이점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기 외적으로도 팀의 역사와 정체성을 품고 팀의 기반을 닦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한국축구의 홈구장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한국 축구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자 지금도 매일 각종 경기가 열리고 있는 곳이 있다. 서울 효창운동장이다. 1960년 10월 완공된 효창운동장은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와 정체성을 품고 있는 곳이다.
역사의 홈구장
효창운동장은 국내 최초의 국제축구경기장이다. 1960년 제2회 아시안컵을 열게 된 한국은 효창공원 내 8000여 평의 대지에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 규모의 천연잔디 축구장을 만들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 기념 경기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10월 14일 제2회 아시안컵이 막을 올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등에 업고 대회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축구협회(KFA)가 발간한 '한국축구 100년사'에 따르면 대회가 시작하는 날,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효창운동장에 모여든 관중은 1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미처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관중들은 경기장 주변 언덕에 올라가 관람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당시 한국은 월남(남베트남)을 5-1, 이스라엘을 3-0, 자유중국(대만)을 1-0으로 물리치고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효창운동장은 불과 몇 년 뒤 흙먼지가 날리는 맨땅 구장이 됐다. 경기가 너무 많이 치러져 잔디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비가 오면 논바닥 같은 구장에서 혈투가 펼쳐졌다. 그러다 동대문운동장이 1962년과 1966년 두 차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면서 대표팀 경기와 아마추어 대회 결승전 등 주요 경기는 동대문운동장에서, 그 밖의 국내 대회는 대부분 효창운동장에서 치러졌다.
극일(克日)의 홈구장
독립운동과 축구는 얼핏 보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독립 투사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처럼 해방 이후 축구인들은 축구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특히 일본과의 축구 경기는 물러설 수 없는 전쟁과 다름 없었고, 효창운동장에서도 그런 전쟁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게 1960년 11월 6일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한일전이었다. 1962 칠레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이었다. 당시 국민 정서상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 자체도 용납되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일본 국가 연주 및 국기 게양이었다.
한국축구 100년사에는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기록돼있다. 월드컵에 참가해 경기를 치르려면 개회식은 규정상 꼭 해야 하는데 그때는 대전국의 국기와 국가가 반드시 게양되고 연주되어야 한다. 오후 2시에 예정된 개회식에서 일본 국가 연주 및 국기 게양을 허용할 지를 두고 정부의 국무회의가 오전 10시부터 1시간 반에 걸쳐 열렸다. 결국 국제대회 규정을 존중해 승인하자는데 의견을 모아 개회식과 경기는 지장 없이 치러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에 위기가 닥쳤다. 전반 초반 공격수 문정식이 헤딩 경합 과정에서 일본 수비수와 부딪혀 쇄골이 부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규정상 부상으로 선수가 나가면 대체 선수가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은 10명이 싸워야 했다.
수적 열세에 처한 한국은 일본에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불굴의 의지로 두 골을 터뜨려 2-1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효창운동장은 일본을 물리쳤다는 기쁨과 환호로 가득 했다.
꿈나무들의 홈구장
효창운동장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동대문운동장이 안타깝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효창운동장은 지금도 한국 축구의 미래가 싹트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국축구의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하는 유소년 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기는 거의 매일 열리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효창운동장은 여자축구 서울시청의 홈구장으로 WK리그를 치른다. 금요일에는 동국대학교,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등 서울권 소재 대학들의 U리그 경기가 치러진다. 주말에는 서울권의 중학교, 고등학교 팀의 유망주들이 리그 경기를 펼친다. KFA가 운영하는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인 골든에이지 훈련의 서울 권역 훈련도 효창운동장에서 이루어진다.
전문 선수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용한다. KFA가 주관하는 디비전리그를 비롯해 축구를 사랑하는 생활체육인들 역시 효창운동장에서 많은 경기를 치른다. 협회 주관 공식 경기만 계산하더라도 1년에 효창운동장이 치르는 경기는 거의 500경기에 이르며 동호인 축구 경기까지 합친다면 연간 2000 경기 이상이 효창운동장에서 치러진다. 수많은 국가대표와 스타플레이어들이 효창운동장을 거쳤음은 당연하고, ‘효창을 밟아 보지 않았으면 축구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듯 지금의 효창운동장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키워내는 공간이 됐다.
단순히 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공간을 넘어서, 행정적으로도 효창운동장은 한국축구의 중요한 홈구장이다. 서울시내의 축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서울시축구협회의 사무실 역시 효창운동장내에 위치해 있다. K3리그 서울유나이티드 팀의 사무국이 있는 공간 역시 효창운동장이다. 지난 7월에는 기존에 종로구 축구회관에 있던 한국OB축구회 사무실도 효창운동장으로 이전했다.
효창의 내일
올해 초 효창운동장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국가보훈처와 서울시가 효창운동장이 있는 효창공원 일대를 독립기념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나서면서 효창운동장을 철거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축구인 입장에서는 한국 축구의 소중한 유산이자 지금도 많은 경기가 열리고 있는 운동장을 철거하겠다는 방침은 절대 수용할 수 없었다.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 3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마련돼있다. 따라서 이 곳을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새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축구의 역사를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 최근의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국가보훈처와 서울시는 지난 4월 효창독립100년공원(가칭) 조성의 기본 방향을 발표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효창독립100년포럼을 구성해 공론화 과정을 밟고 있다. 포럼은 올해 12월까지 매달 1회씩 총회를 열어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효창운동장은 존치하되 육상 트랙을 없애는 등 규모를 일부 축소하면서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KFA는 리모델링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KFA의 기본 입장은 효창운동장이 독립운동과 축구의 역사가 함께 보전되는 공간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축구장의 기능을 보전하면서도 공원과의 조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KFA는 구체적으로 창원축구센터의 사례를 제시했다. 창원축구센터는 경기장 및 관람석이 지상보다 낮게 설계돼 지상에서 봤을 때 시야가 가리지 않고 개방돼있다. 대신 지형 고저에 따라 적절히 건물과 펜스를 활용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했다. 효창운동장도 이같이 리모델링한다면 축구와 추모의 공간이 공존하면서도 축구장으로서의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포럼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올해 안에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 현상설계 공모를 추진, 2021년 착공해 2024년 독립기념공원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