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이 한국영화 100주년, 서울영화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 영화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한 <서울의 영화>를 발간했다.
이 책은 서울의 문화를 알기 쉽게 서술하는 <서울문화마당> 시리즈 제15권으로,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많은 저서를 집필한 한상언 한상언영화연구소 소장이 집필했다.(240페이지 분량)
<서울의 영화>는 총 5장(①영화문화의 형성 ②저항과 순응의 딜레마 ③해방 전후, 서울의 영화 ④영화의 시대, 서울 ⑤영화의 몰락과 부활)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다양한 영화 관련 사진이 함께 수록돼있다.
서울에서의 첫 영화상설 상영과 연쇄극 <의리적 구토>의 제작으로 시작된 우리 영화의 100년
1903년 서울에서는 활동사진이라 불리던 영화가 동대문 인근 한성전기회사 기계창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이때 구름같은 관중이 각국의 도시 풍격을 찍은 활동사진을 구경하기 위해 몰렸고, 이후 영화는 서울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의 하나가 되었다.
최초의 한국영화라고 알려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는 연극의 한 장면을 영화로 재현한 형태로 단성사에서 상영되었다. 장충단 공원, 자동차 추격 장면, 살곶이 다리 등 서울의 익숙한 풍경을 보여주었고, 이를 본 관객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흥행 성공은 조선인 극단에 영화 제작의 불씨를 당겼다.
나운규와 <아리랑>, 카프영화와 도시노동자, 명치좌와 경성촬영소를 통해 본 영화산업의 변화와 발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등의 흥행 성공으로 다져진 조선 영화 산업은 6.10만세운동 이후 그 정신이 나운규의 <아리랑>으로 이어졌다.
<아리랑>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조선영화계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묘사한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이는 서울키노로 이어졌고, <혼가>, <화륜> 등의 도시 빈민을 그린 영화가 제작되었다.
단성사처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연극극장이 영화극장으로 바뀌기도 하였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을 모두 아우르는 대형 극장인 명치좌가 건설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3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키영화인 <춘향전>이 경성촬영서에 제작되어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해방 후 영화산업의 발전과 충무로, 그리고 멀티플렉스
해방과 전쟁을 겪은 후 서울의 영화는 충무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한해 10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이곳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영화산업의 발전은 신성일, 신상옥과 최은희 등의 스타를 탄생시켰다. 그중 1960년대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신필름을 만든 신상옥은 직영극장인 허리우드 극장을 통해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한국영화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스크린 수의 급속한 증가는 IMF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추억서린 옛 극장도 함께 사라졌다.
2012년 마지막 단관극장인 서대문 아트홀의 폐관은 20세기 영화산업이 막을 내리고 다른 시대가 열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넘어 극장에 가지 않는 인터넷 기반 넷플릭스의 등장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서울의 영화>는 서울시내 각 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history.seoul.go.kr)에서 e-book으로 읽을 수 있으며, 시민청 서울책방에서 구매(10,000원)할 수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우리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영화의 탄생지 서울에서 어떻게 영화라는 문화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변하였는지 쉽고 재미있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