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DMZ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완전유해 형태로 발굴된 유해가 고 남궁 선 이등중사로 신원이 최종 확인되었다.
이번 6.25전쟁 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이후 133번째이며,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참전용사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지난 2018년 10월 고 박재권 이등중사에 이어 두 번째이다.
고 남궁 선 이등중사는 1952년 4월 30일 제 2사단 32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1953년 7월 9일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66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후배 장병들에 의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매ㆍ화장 보고서(전사자 유해 매장 기록지)에 따르면 고인은 소총수로서 철원 상석지구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1953년 7월 9일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인한 교전 중 105미리 포탄 낙하로 인해현지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인의 유해는 포탄 파편에 의한 다발성 골절로 인해 지난 4월 12일 우측 팔이 화살머리고지내 전투 현장에서 먼저 발견되었으며, 이후 유해 발굴 확장작업을 통해 5월 30일 완전유해로 최종 수습하였다.
고인 유해의 신원확인은 고인이 참전 당시 3세였던 아들 남궁 왕우씨(현재 69세)가 지난 2008년 등록했던 DNA를 통해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1930년 7월 1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 월운리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린시절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일찍 가정을 이루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23살에 입대를 하고 군인이 된 후 휴가를 한 번도 나오지 못한 채 1953년 7월 9일 정전협정 18일 전, 전사하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고인의 아들 남궁 왕우씨는 “지금 이 순간 아버지를 찾았다는 생각에 꿈인지 생시인지 떨려서 말을 하기 힘들다”며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고인의 여동생 남궁 분씨(83세)는 “살아생전 고생만 하다가 군에 가서 허망하게 돌아가셨는데, 지금이라도 오빠를 찾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2008년 2월, 고인의 아들 남궁 왕우씨는 유가족 시료채취 홍보를 통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직접 혈액검사를 실시하였다. 그 후 11년 동안 애타게 소식을 기다려 온 결과, 2018년 9월 19일 남북군사합의를 통한 유해발굴로 비무장지대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확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국방부는 유가족들이 추석을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귀환행사를 추석 전에 거행할 예정이며,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고 남궁 선 이등중사의 신원확인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6ㆍ25 전사자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채취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 사업을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3만 7천 3백여 명으로 6.25전쟁 이후 미 수습된 유해 12만 3천여 위, 수습 되었으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만 위 등 총 13만 3천여 위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허욱구 단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마지막 한 분까지 찾는 것이 국가의 마땅한 책무이나 아직 12만여 명을 수습하지 못하였고 수습한 1만여 명 또한 신원확인을 하지 못했다”며, “우리의 호국영웅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유가족들의 유전자 확보가 중요하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강조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실질적으로 완화함으로써, 66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돌아오지도, 우리가 다가가지도 못했던 비무장지대 내에서의 유해발굴을 가능하게 하였다.
현재까지(8.20일 기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는 총 1,488점이며, 유품은 43,155점이다.
국방부는 지뢰제거 및 기초발굴 간 발견되는 유해와 유품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다해 수습함으로써, 호국의 영웅 마지막 한 분까지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6.25전사자의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위한 노력을 더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